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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한국 기업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내세운다. 이들은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고, 주도적으로 일하며, 창의적인 발상을 터뜨리길 기대한다. 동시에 변화무쌍한 환경에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현재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만들어내길 요구한다. 리더는 이 문화를 앞장서 구현해야 하고, 구성원은 그 흐름에 동참하거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무대를 설계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조직문화팀과 조직문화 담당자들이다.
.jpg) 선언과 현실 사이의 간극 대부분의 조직이 가진 현실의 운영체제는 수평적 조직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직은 정교한 청사진에 따라 결과를 통제하는 '건축가'형 리더와, 그 청사진의 명확함과 예측 가능성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구성원들의 연합체에 가깝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명확한 지시를 내리고, 그것을 잘 따르는 것이 유능함의 척도였던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아이러니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수의 조직에서 '건축가와 암묵적 동의자'라는 견고한 시스템을 유지한 채로 '정원사와 지지자'가 만들어내는 '수평 문화'라는 꽃만 가져오려 한다는 것이다. 직급은 폐지하고 호칭은 바꿨지만, 리더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청사진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구성원들은 행동 지침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침묵,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벽, 의견 개진에 대한 두려움은 이 구조적 불일치가 낳은 당연한 결과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 달라진 조직의 정의 예측 가능성에 익숙해진 조직은 왜 '정원사'의 문화를 갈망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생존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건축가' 모델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방식이었다. 그러나 시장, 기술, 인재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변하는 지금, 한 번 완성되면 수정하기 어려운 정적인 청사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될 뿐이다. 문화는 설계가 아닌 창발의 산물이다 변화된 환경은 조직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전환을 요구한다. 조직을 통제 가능한 '기계'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봐야만 하는 것이다. 이 유기체 안에서 문화는 리더의 의도대로 설계되는 기계 부품이 아니다. 세대, 직무, 근무 형태, 성별, 성장 환경과 배경지식, 가치관과 성격 특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각기 다르게 가진 사람과, 그 사람들을 둘러싼 조직의 제도와 시스템, 물리적 환경, 그리고 그 조직을 둘러싼 외부 환경 간의 무수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생적으로 피어나는 '창발Emergence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조직문화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도 명확해진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조직에 여전히 기계를 다루듯 수직적이고 선형적인 변화 관리 기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형틀에 네모난 나무토막을 집어넣으려는 행위나 다름없다. 따라서 진정한 리더의 역할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 하위문화가 건강하게 상호작용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 신뢰, 자율성과 같은 문화적 자산을 형성하는 것이다.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건강한 문화가 창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영국의 조직 이론가 랄프 스테이시Ralph Stacey의 '복잡반응과정' 이론에 따르면, 조직의 진짜 문화는 벽에 걸린 액자 속 핵심가치가 아니라 구성원들 간의 일상적이고 국소적인 상호작용local interaction을 통해 끊임없이 창발되는 소통방식이다. 팀원이 실수를 했을 때 리더가 보이는 반응, 회의에서 오가는 대화의 솔직함,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 속에서 문화는 살아 숨 쉴 수 있다.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컬처덱Culture Deck'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정교한 가치체계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강력한 내재화 활동을 추진하고 있지만 결국은 변화가 미미한 이유는 명확하다. 문화를 정적인 '객체Object'나 설치 가능한 '소프트웨어'로 보는 건축가의 치명적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는 객체가 아니라, 조직이라는 유기체 안에서 이미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운영체제OS'이며, 살아있는 '프로세스Process'다. 이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는 '기존의 믿음에 대한 구성원들의 익숙함', 그리고 그 믿음을 강화하는 '사람들 간의 무수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강력한 현실 위에 새로운 문화를 그저 선언하고 설치하려는 시도는, 마치 다른 운영체제 위에서 호환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억지로 실행하려는 것과 같아서 결국에는 충돌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중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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