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1년 차 동아일보 기자가 갑자기 전화기를 끄고 잠적했다. 기자 5년 차 때부터 소설을 조금씩 쓰기 시작해 지난 2011년 한겨레 문학상에 당선된다. 혹자는 진영 논리에서 그를 일명 '회색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구보다도 문제 해결을 위해 궁리하는 그저 성실한 '소설 노동자'였다.


오해 : 공모전 사냥꾼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문단 권력에 관한 얘기가 불거진 바 있다. 출판사가 문학판에서 일종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출판사 문학동네는 이 문제로 좌담회를 주최했는데, 주로 문학 공모전에 관한 의견이 다뤄졌다. 어느 한 소설가는 공모전을 '대형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서의 구조'라며 날 선 공격을 했다.

그해 공모전 최대 수혜자라고 불린, 장강명 작가는 좌담회에서 주류 출판사 비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작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작가로서 자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기 다른 장편소설로 세 개의 상과 더불어 총 1억 5천만의 상금을 받은 장 작가는 스스로 '2010년 이래 가장 운 좋은 소설가'로 인정했다. 그에게 공모전은 어떤 의미일까.

"'문학상으로 떴다'고 말할 수 있지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부분도 있어요."

2000년대 이후 많은 출판사가 신인 발굴을 위해 문학공모전을 도입했지만, 상당수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업논리로만 놓고 보면 오히려 출판사에는 이익이 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작가 지망생들의 입장에서는 등단 기회가 사라진 공모전 수만큼 줄어든 셈이다.

신춘문예와 출판사 공모전 등을 통해 나날이 등단 작가는 늘고 있지만, 이들이 문학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등단 후에도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등단 미아'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차기작으로 작품 활동이 이어지지 않으면,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한편 '(작가가 되는) 문이 매우 좁다'며 하소연하는 작가 지망생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명 '공모전 폐지론자'들은 출판사가 공모전을 주관하면서, 작가를 길들이며 '권력을 휘두른다'고 주장하지만, 장 작가는 '한국소설 시장이 먹여 살릴만한 소설가 자체가 몇 안 된다'며 반박했다. 그는 '현재 등단제도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공모전을 없앤다고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널리스트
요즘 그의 관심사는 한국의 '간판'에 관한 집착과 서열 문화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학벌주의, 대기업 공채제도를 통해 한국 사회를 제대로 보고자 한다. 기자 출신인 작가는 여전히 저널리스트 마인드를 유지 중이다. 그래서 꼭 소설만 쓸 생각도 없다. 최근 민음사 격월간지 ≪Littor≫에 공모전에 관한 글 <문학상을 타고 싶다고?>를 연재 중이다.

문학 공모전과 공채 제도를 비교하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를 다룬다. 이미 문학 공모전 폐지를 주장하는 소설가, 문학 공모전을 만든 출판사 대표, 로스쿨 시위 현장 등을 취재했고, 이 내용을 책으로 묶어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장 작가는 간판에 집착하며, 줄 세우는 서열문화의 주된 이유가 '현재 실력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꼬집었다. 스무 살 무렵에 어느 대학을 갔는지가 이후 수십 년간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학벌주의가 바로 그렇다. 첫 직장이 어디인지에 따라 이후 경력이 크게 바뀌는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정작 한국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시행하는 시험이 과연 필요한 인재를 가릴 수 있는 평가방법인지는 의심스럽다고.

"업무 능력은 오로지 업무로 평가할 수 있는데, 대기업은 여전히 제너럴리스트를 '공채'라는 제도로 뽑습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랑 마크 주크버그가 GSAT를 치면 통과할까요? 이들은 공채로 절대 뽑을 수 없는 인재입니다."

당장 10년 뒤 미래먹거리도 정확히 모르면서 대기업이 그저 스펙 좋은 제너럴리스트를 뽑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제를 발견하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단순한 명제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또 그는 한국 대중소설이 외국소설에 밀리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서평 문화가 약하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때마침 지난 9월 그의 장편소설 ≪댓글부대≫가 민음사가 선정한 '2016 오늘의 작가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미 해당 작품으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기에 작가는 상금으로 전자책 형태의 무료 서평집을 만들고자 한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자기 작품을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요."

작품은 월간 ≪Chaeg≫에서 최근 10년 사이 출간된 한국 소설을 대상으로 선별할 예정이다. 여기서 베스트셀러는 제외된다. 문제점을 오래 취재하고 궁리하면 현재 부족한 것을 알 수 있고, 나아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내다볼 수 있다. 그가 벌이는 이 프로젝트를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겸손한 자신감
거두절미하고, 이제 뭘 해도 되는 작가가 아니냐며 물었더니 그는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작가는 기자를 그만두고 아내에게 1년 3개월간 전업작가 생활을 약속했다. 지난해 8월 수림문학상 수상 전, 바로 전 달인 7월에는 '이제 온라인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실제 기업 홍보팀에서 일자리 제안도 있었다. 아예 굴착기 자격증을 따서 업종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운이 좋았다'는 그의 말에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내비쳤다. 그는 이달 말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장편 소설이 출간될 예정이다.

"저는 소설 쓰는 일이 좋고, 소설은 개인적으로 의미를 주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