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현업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하라"는 구호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경험한 대부분의 조직은 다국적 기업, 국내 대기업, 중견기업을 막론하고 여전히 권한 위임의 딜레마 속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HR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을 현업 리더에게 이양했고, 채용, 평가, 보상, 육성 등 팀 단위에서 리더가 실질적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구조가 보편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 위임은 리더의 성숙도에 따라 구성원 경험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문제가 뒤따른다. 어떤 리더는 "내 조직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제도와 충돌하고, 다른 리더는 보상의 불균형, 평가 편향 등으로 조직 내 갈등을 초래한다. 결국 HR이 다시 개입해 통제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HR의 통제력이 강력한 대신, 제도 운영이 다소 경직되어 리더의 자율성과 민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면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의 경우엔 창업자나 강력한 슈퍼 리더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리더가 권한 위임을 경험할 여유가 부족하고, 조직에는 '빠른 실행자' 역할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기업에서 권한 위임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그러나 기술 환경의 급변, 데이터 기반 경영의 환산, 리더십의 복잡성 증가를 고려했을 때 현업 리더에게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현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타협할 수 없는 생존의 방향성이다.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1990년대 후반, 글로벌 기업들은 더 이상 HR 부서가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팀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장 잘 아는 이는 '함께 일하는 팀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HR 권한을 현업 리더에게 점진적으로 위임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데이브 얼리치David Ulich의 'HR 오퍼레이팅 모델HR Operating Model'이 권한위임의 대표적인 출발점이다. 이 모델에서는 HR의 역할을 HRBP, CoECenter of Excellence, HR 서비스 센터HR Service Center로 구분했으며, HR은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 관리 전문가Administrative Expert, 구성원 옹호자Employee Champion라는 4가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여전히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jpg) 맥킨지McKinsey는 지난 2023년 'HR's New Operating Model'에서 지금의 기업 환경을 규정짓는 혁신 12가지 전환 축Innovation Shifts을 제시하며, HR 아키타입Archetype을 발표했다. 그중에서 "리더Leader-led의 의사결정 권한을 다시Re 강화empowering하고, AI·데이터Machine-powered로 판단의 질을 높여라"는 메시지가 특히나 주목받고 있다. AI와 데이터로 일의 방식이 재정의 되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가속화된 경영환경에서 맥킨지는 기존의 위임 체계를 한 단계 더 정교하게 할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HR의 역할 : 설계, 가드레일, 데이터 HR의 권한을 위임한다고 해서 HR의 역할이 정책 집행이나 행정 지원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즉 HR의 역할은 단순히 HR의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위임을 설계하고Design, 리스크를 예방하는 가드레일을 두며Guardrails, 리더가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Data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jpg) '설계'는 제도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과 성장단계에 맞는 인사 운영 체계를 구조화하는 일이다. 따라서 조직의 성장 속도, 리더십 스타일, 직무 복잡성을 고려해 채용, 성과, 보상, 육성 체계를 통합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권한 위임이 만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조직 수준을 진단하고 단계적으로 위임을 설계해야 한다. '가드레일'은 자율과 통제의 균형을 잡는 안전장치다.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하되, 법적·윤리적 리스크를 예방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HR은 '무엇을 허용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조직의 신뢰 자본을 지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는 인사를 감感이 아닌 증거Evidence로 운영하게 해주는 기반이다. 채용 효율, 이직률, 인재 밀도, 리더십 신뢰도 등 핵심 HR 지표를 분석해 리더의 판단을 지원하고, 비즈니스 성과와 연동된 인사 전략을 지속적으로 개선한다. 때로는 측정되지 않던 것을 정의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수치화하는 시도에서 인사의 가치는 발현된다.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룰 때, HR은 비로소 단순한 지원 기능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 설계자이자 전략적 조정자Strategic Orchestrator'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권한 위임이 만능은 아니다. 조직의 현재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춰 단계적으로 위임 범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의 성숙도와 리더십 역량에 따라 HR은 설계 방식과 가드레일의 강도를 조정하고, 데이터를 통해 위임의 품질을 측정하며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즉 초기에는 HR이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지만, 성장 단계에 접어들면 HR은 기준과 데이터를 제공해 '리더가 스스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역할로 진화한다. 권한을 주는 것은 쉽지만, 신뢰를 쌓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신뢰 위에 세워진 자율만이 진짜 변화를 만든다. HR은 그 신뢰의 기반을 설계하는 '조율자Orchestrator'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직의 리듬을 맞추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정지현 전무는 엑센츄어컨설팅과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HR 및 교육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SAP코리아에서 서비스 사업본부 컨설턴트와 HRBP를 거치며 IT 기반 인사 전략과 조직 개발 역량을 쌓았다. 이후 LG유플러스 인사담당 상무를 역임하며 대규모 조직의 HR 혁신을 이끌었고, 현재는 오케스트로 경영지원실 전무로서 HR 전략과 조직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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