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을 위로하는 이상주의자
반려동물 장례업체 '21그램' 권신구 대표는 펫로스를 "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이라 표현했다.
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을 위로하는 이상주의자
제호 : 2021년 10월호, 등록 : 2021-09-24 10:07:20



반려동물 장례업체 '21그램' 권신구 대표는 펫로스를 "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이라 표현했다. 창업 후 7년간 가족 잃은 고객들의 슬픔을 지켜보고 있다는 권 대표는, 그들이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는 건 주변인 중 최소한 누구 하나쯤은 던질 수 있는 냉소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말했다. 

시선. 펫로스 경험이 없는 그가 창업 당시만 해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패기 넘치던 30대 초반, 건축설계사로 일하던 그는 호기롭게 반려동물 장례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축은 늘 타인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스스로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러려면 콘텐츠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어떤 '공간'을 통해 꿈을 실현하고는 싶은데 뭘 잘할 수 있을지를 몰랐다.

그러던 중 반려동물 장례 사업을 알게 됐고 자신감에 부풀었다. 당시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전국에 열 군데도 채 되지 않았던 데다 그마저도 열악한 시설이 많아 "바꿔볼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권 대표는 회상했다.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부진한 건 아직 좋은 장례 공간이 없어서일 거라고, 좋은 시설의 부족으로 장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상과 달랐던 현실
현실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무모했던 것 같다고 그는 인정했다. 

"좋은 곳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슬픔이 덜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상실인데. 처음엔 그걸 보지 못했던 거죠. '공간'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만 이 사업을 바라봤어요."

막상 뛰어들고 보니 좋은 장례식장 하나 짓고 말면 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려동물 산업은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만 산업 규모 대비 반려동물에 관한 인식 수준이 여전히 많이 낮은 편이라고 그는 말했다.

입양부터가 펫샵을 통한 구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유기동물 문제도 심각하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건데 장례문화가 발전하려야 할 수가 없으며 그가 펫로스를 '공감받지 못할 슬픔'으로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려동물을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이다. "펫산업이 전반적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건강한 성장이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작고 귀엽고 예쁜 아이들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는 이미 많아요. 21그램이 지금 치중하는 영역은 시니어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위한 분야고 대표적인 게 장례 서비스죠." 

'위로'를 위해 그가 그리는 공간
그는 '좋은 장례'의 본질을 '위로'라는 한 단어로 정의했다. 그리고 제대로 위로하려면 슬픔을 터놓고 나누는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례식장이 그 대표적 공간이다. '21그램'이란 이름을 단 장례식장은 창업 때부터 구상한 사업모델이지만 오픈은 지난해 10월에서야 할 수 있었다.

자본이 꽤나 필요한 일인데 투자받기가 쉽지 않아 사업 초기에는 반려동물 유골함이나 유골보석 등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합법 장례식장과 보호자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운영해 중개비를 받는 형태로 사업모델을 이어갔다. 지금은 플랫폼을 폐쇄하고 합법 장례식장 사단법인과 함께 공공포털을 만들어 그간 유료로 제공해온 데이터를 무료 공개하고 있다. '반려동물 장례'를 포털에 검색하면 여전히 불법 업체도 함께 나오는데, 합법적인 곳을 이용하는 보호자들이 많아져야 산업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어서다.

21그램 장례식장에는 현재 18명의 장례지도사가 있다. 장례지도사가 보호자 한 팀당 일대일로 배정돼 상담부터 입관, 화장 후 나온 뼈를 골라내는 수골, 뼈를 분쇄하는 분골, 유골함에 담아 보자기로 싸고 전달하는 마무리까지 전담한다. 운구 요청이 들어올 땐 지도사들이 차량을 가지고 나간다. 사실 모든 과정에 담당 인원을 따로 두는 분업 형태가 훨씬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일대일 연결하는 이유는 역시 권 대표가 생각하는 장례의 본질 '위로' 때문이다.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 과정을 함께하고 상실에 공감하는 것. 그 목표 하나가 사업 자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기업제휴와 투자 잇따라···사업 확장도 구상중
보호자의 회복까지 21그램의 역할이라 믿는다는 권신구 대표는 현재 기업 대상의 B2B 접근 방식으로 펫로스에 대한 인식 개선을 꾀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직원복지를 고심하는 기업 담당자들과 직접 만나, 펫로스는 가족을 잃은 것이므로 가족상을 당했을 때와 같이 반려동물 사망 시에도 유급휴가와 장례비를 지원해달라고 제안한다. 구성원이 자신의 반려동물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대우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당연히 높아지지 않겠냐고도 설득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GS리테일, 카카오, SK하이닉스 등과 제휴를 맺었고 제휴기업은 점점 늘고 있다. 

"아직은 반려동물 죽음 후에 회사에서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못 되잖아요. 그런데 기업 복지로 장례비를 지원하고 애도한다면 사회적 인식이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엔 비할 수 없이 빠르게 개선될 거라 본 거죠." 

21그램은 올해 들어 투자도 많이 받고 있다. 권 대표는 이제야 사업이 막 성장하려는 시기에 진입했다며 "7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고 덧붙였지만, 과거에 대한 씁쓸함보다 미래를 향한 기대감에 더 가득 찬 듯 보였다. 두 달 전 청담에 오픈한 '헬프센터'는 위치적 접근성을 높여 교외에 있는 장례식장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으로, 24시간 상주하는 장례지도사 8명을 통해 상담과 장례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추모실과 의전 차량도 있다. 

연말 오픈 준비 중인 '케어센터'는 아직 국내에 없는 모델인데다 장례와는 또 다른 영역이라 그로선 더 큰 도전을 하는 셈이다. 노령견 보호자들의 커뮤니티로 운영될 이곳은 건강검진 시설과 반려동물 전용 베이커리를 갖추고, 점차 반려동물 유치원이나 호텔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꾸려갈 계획이다.

이상주의자와 영혼의 무게
그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 칭했다. 전에 없던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할 때도 있어야 하므로 스타트업 대표에겐 필요한 기질인 것 같단 말도 덧붙였다. 권 대표는 "21그램의 성장만 목표로 하는 게 사실 훨씬 쉽다"며 그럼에도 다른 합법 장례업체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장례문화를 확산시키고 인식 개선에도 힘쓰는 것이 결국 21그램도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권 대표에게 들어오는 여러 사업 제안들 중엔 초심을 다잡지 않으면 흔들릴 만한 솔깃한 것들이 대다수다. 일단 시작하면 삽시간에 이룰 사업 성장과 부가 눈앞에 그려지는 일들. 뚜렷한 방향성이 있기에 전부 거절하고 있지만 사실 그도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과연 흔들리지 않고 초심을 지켜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그가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권 대표가 떠올릴 것은 그 무엇도 아닌 '21그램'이란 단어 아닐까? 요즘 들어 더 "잘 지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는 21그램, 영혼의 무게. 인간과 반려동물이 육신의 무게는 달라도 영혼의 무게는 같을 거라는 최초의 믿음, 그것이 그를 몇 번이고 바로 세우지 않을까. 
전혜진 HR Insight 기자
 
 
  • 리스트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