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개발은 조직이 바람직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시도하는 일련의 계획적 개입이다. 칭찬, 질책, 상벌, 구조개편, 성과관리, 미션과 비전의 정립, 업무분장, 권한위임, 갈등해결,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 매우 폭넓고 다양한 의도적 개입이 있다. 그런데 간혹 바람직한 결과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했지만,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선 조직개발 자체를 의심하기 쉬운데, 실은 시도했던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퍼실리테이션은 조직개발의 가장 기초인, 빼놓을 수 없는 방법이다. 퍼실리테이션의 결핍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성과를 내는 진짜 방법 조직은 동원 가능한 자원을 활용하여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열중하고 심취해 있다면 조직은 높은 성과를 낼 것이다. 구성원 각자가 일에 열중할 뿐 아니라 서로 협력까지 잘 하는 경우라면 더 높은 성과를 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열중할 수 있도록 북돋우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조직 성공의 가장 중요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과 창출은 모든 조직의 희망사항이다.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하여 조직과 리더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칭찬, 질책, 지시, 보고받기, 일벌백계와 같은 관리 방법 또는 리더십 스킬을 동원한다. 이 방법들이 조직의 성과 창출로 잘 이어지고 있다면 그대로 지속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방법만으로 역부족일 때 리더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협업, 몰입, 자발성, 공정성을 만드는 실제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법, 선배가 주로 사용했던 방법, 지금 알고 있는 방법을 넘어 VUCA시대의 환경과 구성원에게 맞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시너지를 내는 협업의 근원 종이 한 장, 커피 한 잔도 한 개인이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는 없다. 더군다나 업무 환경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의 환경에서 협업은 더더욱 필수적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혼자 다 따라잡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체계와 루틴을 가진 업무 방식의 한계는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창의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타인과 타 부서, 타 조직과 협업을 해야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결합하여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한편 정보화 사회, 지식 사회, 고학력 사회에서 구성원의 능력치는 점점 높아지고, 심지어 학력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높은 수준의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을 조직이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든다. 개인의 지적 능력과 정보력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업무성과 또는 조직의 성과로 실현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류, 특히 대한민국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현장에 가보면 여전히 소통의 부재, 협업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많은 잠재력이 어떤 장애물로 인하여 땅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협업을 가능케 하려면,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가 보유한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참여자 개개인의 이익을 살펴야 한다. '전체를 위하여 개인을 희생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협업에 참여하는 개별 구성원에게 도움을 주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이익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질문은 퍼실리테이션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성원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리더는 구성원에게 어떤 이익을 실현하고 싶은지 물어보길 두려워한다. 묻지 않아서 이기적인 것인데, 이기적이라 생각하여 묻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다. 질문하지 않으면 '지시'라는 개입방법에 의존하게 되는데, 지시는 협업을 끌어내기 어려운 방식이다. 똑똑해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리더가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철학을 품고 있어야 편하게 물을 수 있다. 사사로운 이익이 살아나게 하면 모두를 위한 공이 열린다는 의미다. 구성원들이 사사로움을 추구하도록 두면 조직이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조직개발의 시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사로운 이익을 실현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협력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때 비로소 협력을 시도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채찍을 맞아야 하는 경우마저, 그가 채찍을 맞지 않으려는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협력을 하는 것이다. 사익은 공익과 등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주보고 있다. 몰입하는 조직 몰입해서 일할 때 성과가 높다. 그래서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마지못해 일하기보다 몰입해서 일하길 기대한다. 몰입은 인간의 본성과 같아서 방법을 잘 조성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 사람들은 몰입한다. 재미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몰입한다. 게임을 즐길 때, 학창시절에 어떤 문제를 풀 때, 100m 달리기를 할 때 사람들은 몰입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몰입하는 존재이지만 몰입을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일일 때,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할 때, 나다운 것일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때, 일이 진전된다고 느낄 때, 내가 성장한다고 느낄 때, 나로 인하여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공정하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몰입한다. 끊임없이 내가 중심에 있다. 리더가 해야 하는 일은 "몰입해서 일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이 일어나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최근 많은 조직에서 물리적인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워라밸과 복지를 증진하고, 조직을 개편하고 별명을 부르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을 비켜간 방법들이다. 핵심 방법은 '나'를 살려주는 것이다. 나를 살려주는 것은 바로 구성원에게 결정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다른 주변적인 시도는 많이 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이 되는 이 결정권은 리더들이 움켜쥐고 잘 내려놓지 못한다. 당근과 채찍으로 몰입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지만, 더 깊은 몰입의 출발은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당장 모든 일을 선택하게 할 수 없다면, 일의 큰 방향은 리더가 정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식을 구성원에게 맡기는 것이 몰입을 이끄는 출발이다. 그리고 점점 일의 방향까지 함께 논의하여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 몰입의 필수요건이다. 여기서 '함께 논의하여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에 필요한 것이 퍼실리테이션이다. 이 과정이 잘 실현되면 구성원들은 결정된 그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역량, 자신의 성취를 고려한 결정을 하여 바람직한 진전을 만들면서 몰입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자발적인 조직 자발적인 조직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스스로 실행에 옮기는 조직을 말한다.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을 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보상 또는 이익이 명확할 때, 잘 할 수 있을 때, 공정하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일한다. 자율성이 없다면 자발성이 잘 생겨나지 않는다. 자율성은 일 혹은 일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재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일하라는 요청이나 훈계로는 자발성을 흉내만 내게 할 뿐 진정한 자발성을 끌어낼 수 없다.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일의 시작과 결과물이 모두 자신의 것이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결정권을 갖고 한 일의 결과물을 구성원들은 곧 자신의 성취로 받아들여 성취감을 선물 받는다. 그러면 일하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붙는다. 성취감이라는 선물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그것은 또 다른 성취 혹은 성취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유인한다. 이 과정이 연속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자발성이고 몰입이다. 공정한 조직 공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한 사람은 그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크고 작은 복수를 한다. 구성원들이 일에 몰입하기보다 복수로 공정을 실현하려 들면 조직엔 큰 문제다. '절차적 공정성'의 실현을 위해서는 '참여'가 필수인데, 진정한 참여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미 결정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해명을 듣거나 사후 설명회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낮은 수준의 참여에 불과하다. 구성원들이 공정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려면 진정한 참여의 과정, 즉 그들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구성원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때 집단의사결정을 원활하게 이루어내는 기술이 퍼실리테이션이다. '분배적 공정성'은 노력과 투입 대비 얻은 것이 모두에게 일정하게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10을 일한 사람이 10을 벌고, 100을 일한 사람이 100을 번다면 사람들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누가 10을 일하고 100을 일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일이다. 이러한 오해를 풀어가려면 소통이 필요하고 그 소통은 여러 명이 동시에 참여해야 실현 가능하다. 이 때 참여를 제대로 이끄는 것 역시 퍼실리테이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제대로 참여하는 조직 조직마다 수평과 참여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실현되는 사례는 여전히 많지 않다. 참여가 없이는 공정, 자발, 몰입, 협업 등 모든 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이 무너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실제로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구성원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조직에서 흔히 관찰되는 구성원에 대한 평가는 구성원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 하에서 리더는 이를 방지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통제와 감시의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은 구성원들을 본디 성실하고 협력적이며 헌신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성실하고 협력적이며 헌신하는 일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구성원이 이런 존재라면, 감시하고 통제하기보다 질문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본디 성실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장애물이 무엇인지 질문해 답을 찾고 그것을 함께 극복하는 방법 또한 찾아간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즐겁게 일에 몰입할 것이다. 조직개발의 출발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를 퍼실리테이션하여 어려움을 스스로의 인지적 힘으로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거기에는 리더의 지시가 아닌 질문이 절대적이다. 지시를 전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절반은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무엇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무엇이 필요한가요?" "어떻게 그것을 구할 수 있나요?"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요?" "타인의 도움을 어떻게 얻어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참여, 공정, 자발, 몰입, 협력을 이끌 수 있는 질문의 작은 예이다. 참여는 공정과 자발을 부르고, 공정과 자발은 몰입과 협업을 부른다. 그리고 몰입과 협업은 성과를 창출한다. 모든 조직이 한결같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 출발선과 실현과정에 퍼실리테이션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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