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사람을 남기는 사람
내 직장생활의 대부분은 연구개발 조직에서 새로운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리더, 사람을 남기는 사람
제호 : 2021년 12월호, 등록 : 2021-12-01 13:53:02



내 직장생활의 대부분은 연구개발 조직에서 새로운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탄소섬유복합소재,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와 같이, 지금은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20여년 전에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분야들이다. 계획을 수립하는 데 불확실성이 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런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창의력으로 대변되는 '진보성'과 리스크 매니지먼트로 요약되는 '보수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다 보니 동향 파악도 중요하고, 자동차와 같은 융합 산업을 다루다 보면 다양한 사안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신기술을 개발하는 조직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기술 자체보다 오히려 '팀워크'이다. 



업무를 보는 시각보다 중요한 '사람을 보는 지혜' 
내가 리더십이나 조직관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분야에 처음부터 특별히 관심이 있었거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엔지니어로서의 내 커리어는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능력을 키워주었지만 7, 8명으로 시작해 수십, 수백 명의 조직을 이끌게 되면서 업무나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보다 '사람'을 보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최적의 관리 방식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책을 읽고 선배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런 메모들이 쌓여 엔지니어 배경을 지닌 경영자가 생각하는 리더십에 관한 책을 출간하게 됐다. 후배들이 내 어깨를 밟고 올라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제목에 담은 저서, 《거인의 어깨》이다.

4년 전인 2018년 초, 현대모비스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처음으로 독립형 사업부제를 시도하여, 그 첫 모델로 '전동화사업부'가 발족됐다.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조직을 갖춘 회사 안의 회사인 사업부를 이끄는 일은 기계나 도면보다 사람을 더 많이 상대해야 하는 위치라, 엔지니어의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었다.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는 연구개발 조직에 비해 생산 현장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분, 초를 다투고, 구매나 영업 조직은 단 몇십 원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재정을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특성이 다른 조직들이 한 지붕 아래 있다 보니, 서로 간에 생기는 갈등을 최소화하고 협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 업무가 됐다. 


인내와 진정성이 리더십의 핵심 
리더의 업무를 설명하자면 조직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단순히 '조직을 이끄는 자'로 표현하기에는 그 역할이 너무나도 복잡미묘하다. 조직원들도 가정에서는 가장이자, 자랑스러운 아빠, 사랑받는 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단지 부하직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이 생긴다. 부하직원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육성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항상 그들의 단점이 보이고, 그로 인해 믿고 일을 맡길 수가 없게 된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조직원들에 대한 배려이고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태도를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겸손의 모습이고 인테그리티Integrity의 또 다른 표현이다. 조직의 중심이 리더가 아니고 조직원들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발휘하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고 권력이 된다.

리더의 역할이 어려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부하직원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보고를 하는 상사에게는 달콤한 말로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 인정을 받을 수도 있으나, 정작 내가 함께 일하며 훗날 내 리더십을 평가할 조직원들은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다. 언행이 일치하는지, 조직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정책을 택하지는 않는지를 리더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판단한다. 그런 이야기를 입을 열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뿐이다. 그래서 리더는 투명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보이는 특성이기도 한 투명성은 조직이 흔들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반이 된다.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리더의 모습은 부하직원들로 하여금 우왕좌왕하지도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리더의 역할, 사람을 키우고 남기는 일
리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나는 한결같이 '사람을 키우고 남기는 일'이라고 답한다. 지금은 부족하고 사고도 많이 일으킬 수 있으나, 그러기에 그들을 지키고 키우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사업만 중장기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조직문화를 올바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리더를 많이 키워내야 한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다는 우리나라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리더가 지녀야 하는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200년 전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그의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서 리더십을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묘사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자식이 나보다 더 잘되기는 바라는 그런 마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수종 들던 천사가 지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오셨는지 물어보았다. "제자들을 키우고 왔단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그나마 수제자라던 베드로도 재판정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그 제자들 말고 다른 일은 어떤 걸 하셨어요?" 이 심각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없지. 남은 열 한 제자가 내가 한 모든 일의 결과란다." 나는 오늘도 내 부하직원들을 이런 마음과 기대로 대한다. 그런 면에서 리더십의 결정체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 안병기 박사는 서울대학교와 미국 Virginia Tech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미국 직장생활 후 2004년에 귀국하여 지금까지 현대 자동차그룹에서 친환경차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현대모비스 전동화BU장으로 근무 중이며, 리더십과 조직관리에 관심이 많아 최근에 이를 주제로 한 저서 《거인의 어깨》를 출간한 바 있다.
안병기 현대모비스 전동화BU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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