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극단적 선택, 회사의 책임은 어디서 갈리나
재직 중인 직원의 자살을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더라도,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의 민사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직원의 극단적 선택, 회사의 책임은 어디서 갈리나
제호 : 2026년 11월호, 등록 : 2026-10-23 0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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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중인 직원의 자살을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더라도,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의 민사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산재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도 한다. 직원의 자살이라는 유사한 사건임에도 결론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산재 판정과 판결을 바탕으로 회사의 책임이 갈리는 기준과 사건 전후에 HR이 해야 할 일을 살펴보자.



공단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가'를 묻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의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을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다만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자해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는 그 사유를 세 가지로 정하고 있다.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의 자해행위,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의 자해행위, 그리고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다. 앞의 두 가지 사유는 치료나 요양 이력이 있어야 하지만, 세 번째 사유는 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고의나 과실과 관계없이 보상하는 제도이므로, 회사의 과실은 산재 인정 요건이 아니다. 공단이 판단하는 핵심은 '업무상 사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 이르렀고, 그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는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공단은 사업장에 사실관계확인서나 표준문답서를 보내 증상이 처음 나타난 때를 기준으로 대략 6개월 전까지의 사건을 조사한다. 다만 주된 원인이 그보다 앞선 시기에 발생했다면 해당 시점부터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인사 기록과 조직도, 근태 자료, 괴롭힘 신고 관련 조사 기록, 감사 및 징계 기록 등도 요구한다.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면 가족과 동료의 진술, 근태 및 메신저 기록 등을 토대로 증상이 언제 시작됐는지 거슬러 확인해야 한다. 이 때문에 회사가 보유한 기록이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된다.

회사가 산재 인정에 이견이 있어 공단에 의견을 제출할 때도 이러한 기록은 필수적이다. 산재 인정 여부는 공단이 결정하지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료에는 회사가 제출한 기록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실을 정확하게 남긴 기록은 업무 요인이 없었음을 설명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회사가 필요한 조치를 했음을 입증하는 데도 중요하다. 반면 사건이 발생한 뒤 사실관계를 임의로 수정하거나 추측에 근거해 작성한 기록은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나 민사상 책임을 따질 때 모두 회사에 유리한 근거로 활용되기 어렵다.


법원은 '알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민사 책임은 별개다.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따라 근로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작업 환경과 시설을 정비하고,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 건강을 보호할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대법원은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사고가 업무와 관련될 뿐 아니라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예측 가능해야 하며, 사용자가 재해 발생 가능성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요건을 입증할 책임은 근로자 측에 있다. 이처럼 산재 인정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판단 기준이 다르다. 대법원은 산재 승인 처분이 확정되더라도 민사법원이 그 근거가 된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에 구속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민사법원은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업무 관련성, 사용자의 예측 가능성, 보호의무 위반 여부,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별도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법원이 회사에 민사 책임을 묻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회사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경우다. 직무가 바뀐 뒤 세상을 떠난 개발자 사건에서 법원은 고인이 회사에 우울감을 호소한 적이 없고 상시 운영되던 상담실도 업무 문제로는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1) 둘째, 위험을 알게 된 뒤 조치한 경우다. 병가를 내면서 회사가 우울증을 알게 된 뒤 유급병가와 무급휴직, 복직을 거듭 허용하며 부담을 덜어 준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의 과실을 부정했고,2) 이 판결은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셋째, 위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방치한 경우다. 재무실장이 직원의 손등에 남은 자해 흔적을 목격하고 경영지원실장에게 보고까지 했는데도 별도의 조치가 없었던 회사는 위자료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법원은 자해 흔적의 목격과 보고, 과도한 업무 강도, ADHD 진단 고지 등으로 회사가 자살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봤으며,3) 이 판단은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법원이 민사 책임을 판단한 기준은 '일이 힘들었느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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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 대상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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