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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9년간 40여 개 조직에서 500명이 넘는 저성과자를 마주하며 PIP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를 기획·설계·운영해 왔다. 그 현장의 여정 속에서 수차례 노무·법무 자문과 자체적인 판례 케이스 스터디를 병행하며 다층적 경험을 축적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PIP를 둘러싼 현장의 질문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이 사람의 성과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실제로 개선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법률적·노무적 리스크 없이 PIP를 운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PIP를 바라보는 현장의 관심이 '성과 개선'에서 '운영 과정의 법적 리스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 지금의 PIP 수요는 어디에서 왔는가 고용노동부는 2016년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 이른바 양대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저성과자에 대한 통상해고의 판단 기준을 행정지침 형태로 제시했다. 2017년 노동계의 반발 속에 지침은 폐기됐지만, 그 사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저성과자 관리제도를 포함한 인사관리 제도 개편 컨설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최근 3년 사이에는 민간기업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성과를 이유로 한 통상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1)들이 등장했고, 특히 현대중공업 저성과자 해고 사건에 관한 판결에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제시되면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PIP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높아졌다. 최근 SK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HD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등의 관련 소송에서 사용자 측이 승소한 사례가 알려진 것도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법원이 단순히 'PIP를 거치면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법원은 해당 근로자가 장기간 저성과를 보여왔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축적돼 있고, 기업이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평가와 성과 개선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기업들이 승소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PIP를 운영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이전부터 수년간 축적해 온 체계적인 평가와 합리적인 조치의 기록에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을 놓친 채 PIP를 해고를 위한 절차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향후 분쟁에서 사용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법원은 PIP만을 보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등의 징벌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저성과자 해고 역시 이 조항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정당한 이유'에 관한 판례의 판단 요소를 HR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① 성과 부진의 정도 : 성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할 것 ② 저성과 기간의 지속성 : 저성과 상태가 상당 기간 반복·지속될 것 ③ 성과 개선 가능성 : 향후 성과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을 것 ④ 성과개선 기회의 부여 : 교육, 배치전환 등 실질적 기회를 제공했을 것 ⑤ 성과평가의 공정성 : 평가 기준과 절차가 합리적일 것 이 다섯 가지 개념 가운데 ①, ②, ⑤는 PIP만으로 충족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PIP는 ③과 ④를 충족하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법원이 요구하는 기준을 모두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섯 가지 기준 중 세 가지는 PIP를 운영하기 이전, 평상시의 평가와 성과관리 과정에서 이미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평상시의 성과관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상당수 조직은 상대평가를 통해 매년 일정 비율의 하위 등급자를 기계적으로 산출한다. 그러나 다른 구성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낮다'는 사실만으로는 ①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직무별 '최소 기대 수준'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면, 하위 10%를 5년간 성실히 산출했더라도 ①을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 ② 역시 마찬가지다. 평가 등급은 결과를 보여줄 뿐, 상당 기간 이어진 부진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이를 실질적으로 입증하려면 조직이 평상시부터 남겨온 명문화된 '정성 피드백'과 '면담 기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⑤의 공정성은 앞선 두 가지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여기서 법원이 묻는 공정성은 '결과의 타당성'을 넘어 '절차의 예측 가능성'에 가깝다. 구성원이 평가 기준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했는지, 평가자를 견제할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 이의제기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 등이 중요하다. 평가 절차 자체가 신뢰를 잃으면 그 위에 쌓인 저성과의 입증(①·②)이나 개선 노력(③·④) 역시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PIP가 실질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③과 ④, 즉 '개선 기회 제공'과 '실질적인 개선 노력'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HR 차원의 배치전환이나 징계 역시 개선을 위한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러한 조치만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징계 이력이 있는 저성과자를 선뜻 받아들일 부서는 현실적으로 드물고, 징계는 특정 행동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역량 자체를 끌어올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직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지만, 당사자의 역량과 행동을 교정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결국 '교육'이 필요하다. PIP 설계에서 반복되는 3가지 맹점 필자는 사용자가 패소한 사건을 판결문으로 케이스 스터디할 때 뒤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읽곤 한다. 패소 판결에서 법원이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PIP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개선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부여됐다고 보기 어렵다' '평가 기준이 사전에 고지됐다고 볼 자료가 부족하다' '개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만한 사정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들을 뒤집으면 그대로 PIP 교육의 설계 요건이 된다. 판례는 사후의 판단문이지만, 사용자에게는 사전에 점검해야 할 지표가 된다. 이 공식을 활용해 앞서 살펴본 판례의 판단 기준을 실제 PIP 설계에 적용해 보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그중 PIP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3가지는 다음과 같다. 맹점 1 목적성은 기획서가 아니라 운영에서 드러난다 필자는 '개선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PIP를 도입하고 싶다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물론 기획서의 첫 장에는 언제나 '역량 강화' 또는 '개선'이라는 목적이 적혀 있다. 그러나 법원은 PIP의 목적을 문서에 적힌 문구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PIP를 왜 도입했는지, 실제로 개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결국 PIP의 목적은 기획서가 아니라 실제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한, 사용자의 PIP 참가명령을 사용자 지시권의 행사로 인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PIP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실제 운영 방식이다.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성과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권리남용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가에 관한 피드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실상 퇴출을 목적으로 PIP를 운영했다고 판단한 사안에서는 해고의 정당성이 부정됐다. 반대로 성과향상 프로그램의 적법성이 인정된 사안에서는 '개인 역량 강화를 위해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런데 이 차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PIP 대상자다. 필자가 지난 9년간 ... 중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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