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늘 앞장서던 사람이 먼저 침묵하고, 결국 조직을 떠나는 일련의 과정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인원은 그대로이고 매출도 아직 견고하지만, 리더는 조직 안에서 무엇인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대개 성장경험의 소멸이 있다. 질문이 줄고, 실수와 재작업이 늘어나고, 같은 회의가 반복되면서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았을 일'을 지나치기 시작한다. 구성원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통한 배움의 과정이 사라지면 조직은 서서히 성과를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힘을 잃는다. '역량붕괴Competency Collapse'가 시작된 것이다.
![]() 성장 기능을 잃어가는 한국 조직 역량붕괴는 조직이 현재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힘뿐 아니라, 앞으로 성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성과와 역량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과가 현재 만들어낸 결과라면 역량은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다. 역량이 약해지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관계, 업무 방식이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역량붕괴가 지속된다면 조직의 문제는 성과지표로 나타나게 된다. 역량을 유지하려면 구성원이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선임이 후배에게 판단의 이유를 설명하고, 실패의 원인을 함께 짚어보고, 새로운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도록 기회를 주는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은 역량으로 축적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쌓인 판단 기준과 업무 방식은 다른 구성원에게 전달된다. '성장경험'이란 이처럼 실제 일을 통해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의미한다. 결국 건강한 조직은 일을 해내는 동시에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계속 만들어낸다. 문제는 지금 한국 조직에서 이러한 성장경험을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와 노동공급의 감소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위계적인 의사결정과 보고 중심의 업무 방식은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제한한다. 여기에 AI가 빠르게 업무에 들어오면서 사람이 직접 해보며 배웠던 성장 과정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와 효율이 우선되면서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 등한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AI는 성장경험의 감소를 가속할 수 있다. AI가 자료를 요약하고 초안을 작성하면서 업무 속도는 빨라졌지만, 구성원이 직접 자료를 비교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가설을 세우는 과정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주니어에게는 스스로 판단 기준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선임에게는 자신의 판단 근거와 노하우를 설명하고 전수하는 기회가 함께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로 한 유통기업의 전략기획팀에서는 주니어 분석가가 생성형 AI로 임원회의용 리스크 요약본을 만들고 팀장이 이를 다듬어 보고했다. 문서는 빠르게 완성됐지만, 이후 '왜 이 공급사의 리스크를 낮게 판단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AI를 통해 결과물을 만드는 효율은 높아졌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판단 역량은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AI는 잘 활용하면 구성원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지만, 사람이 직접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과정까지 대신하면 조직의 역량 축적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성장경험이 사라진 조직이 보내는 신호 성장경험이 사라지면 조직에서는 <그림 1>과 같이 다섯 가지 손실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매뉴얼에는 담기기 어려운 경험과 노하우인 '맥락지식'이 사라지고, 무엇이 좋은 판단인지 가늠하는 '판단 기준'이 흔들린다. 필요한 순간에 적합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신뢰인 '관계자본'도 약해지고, 다음 세대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학습흐름'이 끊긴다. 그 결과 높은 성과를 당연하게 여기던 조직의 '기대 수준'까지 낮아진다. 이 다섯 가지 손실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가 약해지면 다른 하나도 함께 흔들리면서 결국 조직 전체의 역량과 성과를 만들어내는 힘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이러한 연쇄가 곧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중략 ... |
|
기사 전문은 구독권한이 있는 회원께만 제공됩니다. 먼저 로그인 하세요.
로그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