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보다 빠르게 찾아온 자리, 처음 HR 총괄이 된 이들에게
최근 '리더가 젊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준비보다 빠르게 찾아온 자리, 처음 HR 총괄이 된 이들에게
제호 : 2026년 8월호, 등록 : 2026-07-23 17:32:30



최근 '리더가 젊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성장기 스타트업에서는 입사 2~3년 차에 리더십 역할을 맡아 팀을 이끌기도 하고,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인사 전반을 맡으며 사실상 HR 총괄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짧은 경력과 이른 나이에 리더가 되는 일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위계가 얇은 조직에서는 모든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있고, 속도를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일수록 축적된 경력보다 당장의 실행력과 성장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여기에 사회 전반에서도 리더십의 중심이 권위와 경험에서 코칭과 지원으로 이동하면서, 연차가 주던 프리미엄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그 결과 결코 가볍지 않은 리더의 자리를, 점점 더 이른 나이에, 대개는 충분한 준비가 끝나기 전에 맡게 되는 일이 늘고 있다.



승진은 보상이 아니라 시험이다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는 저서 《피터의 법칙The Peter Principle》에서 조직의 구성원은 저마다 자신이 무능해지는 자리에 이를 때까지 승진한다고 언급했다. 이 명제는 반세기 뒤 실증으로 뒷받침됐다. 미국 214개 기업의 영업 인력 5만여 명을 분석한 연구1)에 따르면, 영업 실적이 뛰어난 직원일수록 관리자로 승진할 가능성은 높았지만, 정작 관리자가 된 이후에는 부하직원 각각의 매출이 평균 7.5% 낮아졌다. 이처럼 과거의 영업 실적은 좋은 관리자를 예측해 주는 유효한 변수는 아니다. 조직은 대개 현재 직무에서 거둔 성과를 근거로 사람을 승진시키지만, 다음 자리가 요구하는 역량은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의 간극은 직급과 직책이 높아질수록 더욱 벌어진다. 팀장에게는 구성원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역량이, 임원에게는 전략적 판단과 자원 배분, 조직 설계 역량이 새롭게 요구되기 때문에 이전 자리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실행력과 전문성만으로는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승진은 지난 성과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역량을 시험받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장기 조직에서는 이 전환이 더욱 급격하다. 역량이 충분히 검증되기 전에 자리가 먼저 주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진 직후 찾아오는 불안은 개인의 결함이라기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신호에 가깝다.

문제는 상위 리더십으로 올라갈수록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HR은 성과가 매출이나 출시일처럼 딱 떨어지지 않아, 경영진조차 무엇을 기대할지 정리하지 못한 채 "좋은 사람 잘 뽑아 달라" "조직이 잘 굴러가게 해 달라" 정도의 모호한 주문만 남기기 쉽다. 기대가 흐릿할수록 침묵을 승인으로 착각하기 쉽고, "이건 아닌데"라는 대표이사의 말 한마디에 방향이 흔들린다. 결국 HR 총괄에게 기대치는 스스로 정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대상에 가깝다. 무엇을, 언제까지,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할 것인지 먼저 문서화하고 경영진과 합의할 때, 침묵은 비로소 승인이 아니라 합의가 된다.


총괄의 역량은 실행이 아니라 사고력에 있다
실무자와 팀장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총괄은 '무엇을, 왜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HR 총괄에게는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첫째는 개별 사건을 구조의 문제로 읽어내는 추상화 능력이다. 실무 HR은 채용을 진행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평가를 운영하는 등 눈앞의 과제를 해결한다. 반면 총괄은 각각의 사건 뒤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읽고, 이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조직의 문제로 연결해야 한다. 한 사람의 퇴사를 붙잡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 자리에서는 같은 이유로 사람이 반복해서 떠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역량은 질문을 바꾸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인가, 직무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를 한 단계씩 넓혀 질문해 보는 것이다. 같은 유형의 문제가 세 번 이상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전략과 사업에서 출발해 조직을 역산하는 힘이다. 총괄은 인사제도부터 고민하지 않는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서 출발해, 이를 위해 어떤 조직과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를 거꾸로 설계한다. 이러한 역량은 사업 계획을 HR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데서 시작된다. 매출 목표와 사업 로드맵을 보며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6개월 뒤, 1년 뒤에는 어떤 조직이 필요하고, 어떤 리더와 인재가 있어야 하는가"를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이 두 배로 성장했을 때 나타날 병목과 리스크까지 미리 상상하며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는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는 힘이다. 사람과 조직에 관한 결정은 누구를 리더로 세울지, 조직을 어떻게 설계할지처럼 정답을 확인하기 전에 내려야 하는 사항이 대부분이다. 이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제시한 '한 방향 문'과 '양방향 문'의 구분이 도움이 된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인 '한 방향 문'은 신중하게,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인 '양방향 문'은 빠르게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HR 총괄의 판단은 혼자만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출을 책임지는 사업부도, 직접 쥔 제품도 없이 '빌린 권력'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 힘은 경영진의 신뢰와 구성원의 신용에서 비롯되며, 아무리 옳은 판단이라도 경영진을 설득하지 못하면 실행될 수 없다. 결국 사람에 대한 판단을 사업의 언어로 설명하고 조직의 선택으로 연결하는 것이 앞선 세 가지 역량을 현실로 만드는 마지막 능력이다.


HR 총괄이 된다는 것은 잘 실행하던 사람에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는 일이다. 스킬 하나를 더 익히는 일이 아니라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기에, 처음이 낯설고 버거운 것은 당연하다. 결국 HR 총괄의 진짜 영향력은 직책이 아니라 조금씩 쌓아 온 신뢰에서 나온다. 그러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결국 더 나은 판단을 부단히 거듭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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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an Benson, Danielle Li & Kelly Shue(2018), "Promotions and the Peter Principle," NBER Working Paper No.2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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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민 본부장은 코스닥 상장 지주사부터 고성장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규모의 조직에서 실무부터 총괄에 이르는 인사의 전 영역을 수행해 왔다. 현재 '랩노쉬' '한끼통살' '클룹' 등을 운영하는 소비재 D2C 기업 이그니스의 인사 총괄로, 고성장·IPO 준비 국면에 맞는 인사전략과 조직 체계를 설계하고 있다.
정정민 이그니스 HR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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