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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오래전부터 한국 노동시장에서 제기돼 온 화두다. 같은 일을 하고도 고용 형태나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이 크게 갈리는 구조는 사회적 불신을 키워왔다. 이와 관련해 최근 언론은 정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 소식을 알렸는데, 주된 내용은 근로기준법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 명시한다는 것이다.
.jpg)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의 배경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등장한 배경 중 하나는 노동시장 내 불공정한 임금격차 때문이다.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이 상식이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용형태에 따라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7%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하청 소기업의 임금은 원청 대기업의 60% 내외에 머물러 있다. 정규직 직원이 비정규직에 비해 책임과 업무 전문성이 더 크다면 이 같은 임금 격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는 공정한 보상이라고 할 수 없다. 원·하청 간에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도 업무의 차이라기보다 원청의 하도급 금액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배경은 기업의 환경 변화이다. 과거 기업의 임금체계는 호봉급으로 근속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였다. 일부 기업들이 성과급 비중을 늘리고 있으나 근속은 여전히 중요한 임금인상 요소다. 문제는 근속이 늘어나는 만큼 개인의 역량이 비례해서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은 단순히 근속보다는 성과와 개별 역량을 기준으로 한 보상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들의 보상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과거 고용안정이 보장된 구조 속에서는 구성원들이 장기근속을 하며 임금이 상승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초임이 낮더라도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 기업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20대 후반~40대 초반의 MZ세대는 근속보다 직무와 성과에 따른 보상을 더 공정하다고 여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에 명시하면 동일한 일에 대해 동일한 보수가 지급돼 불합리한 임금 차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법과 현실이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녀고용평등법은 여성과 남성 간 불합리한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남녀 간 임금격차는 OCED 평균인 11.3%p를 훌쩍 뛰어넘는 23.9%p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 하더라도 현실 관행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오랜 관행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봉급, 성과급, 또는 임금체계조차 없는 시급 등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부합하는 직무급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이는 기업의 노력만으로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임금 체계의 변경은 직원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어 개별 직원이나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직무급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감인데, 이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그동안 정부가 직무급이 아닌 직무성과급을 강요해 왔기 때문이다. 직무급과 성과급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이를 통합해 사실상 성과급을 강조해온 탓에 노동자들의 불신이 커졌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기업이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을 고용할 때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줄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럴 바에는 정규직을 고용한다는 것이 기업의 생각일 것이다. 즉 싸게 일을 시킬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인건비를 비싸게 주면서 비정규직이나 용역, 하청 등을 활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현실은 법과 달리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확대에 따른 기업의 준비 이재명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정착을 위해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한다. 하나는 임금분포를 국가통계로 공시해 임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업종별로 공식화된 임금 수준을 확인할 수 없다. 대분류나 중분류로 임금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업종·직종별 시장 임금은 알 수 없는 구조이다. 예를 들어 용접공의 임금은 어느 정도인지, 콜센터 상담원의 평균 임금은 얼마인지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다. 따라서 매년 업종·직종별 임금조사를 통해 평균임금과 상위 25%, 하위 25%의 임금분포를 공개한다면 유사 직종의 임금수준을 통일적으로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정책은 초기업 교섭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업별 교섭은 기업의 지불 능력이 크게 작용하지만 초기업 교섭을 하게 되면 기업을 넘어 업종의 특징이 반영된 임금 수준이 결정되고, 업종 내 임금도 통일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직무급이 발전한 선진국은 노사가 매년 직무에 따른 임금을 산별교섭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을 통해 기업을 넘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러한 정책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세계와 경쟁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임금의 공정성과 수용성을 높여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이런 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업에게 있어 기회이자 도전이다. 기회는 근속에 따른 임금인상이 아니라 직무가치를 반영한 보상을 적용하게 된 것이고, 도전은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 형태나 기업의 규모보다 직무 특성을 반영한 임금수준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기회를 살리고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회사 내 직무들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와 직무가치에 따른 차등적인 보상 정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조합이 조직된 기업이라면 기업별 교섭이 아닌 초기업 교섭을 통해 갈등은 외부화하면서 임금은 업종별로 통일적으로 만들어 임금을 통한 인력 활용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급진적 변화는 어렵겠지만 준비하는 기업만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정흥준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강의에 나서고 있으며, 비정규직 등 새로운 유형의 노동과 노사관계 정책 방향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정의로운 노동》 《노동과 ESG》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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