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삶을 담는 그릇, 요즘 시대 주거의 변화를 읽다
같은 크기의 원룸이지만 어떤 곳은 공부방이 되고, 어떤 곳은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공간이 됐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 요즘 시대 주거의 변화를 읽다
제호 : 2025년 10월호, 등록 : 2025-09-23 11:47:08



같은 크기의 원룸이지만 어떤 곳은 공부방이 되고, 어떤 곳은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공간이 됐다. 1995년 석사 과정에서 목격한 이 장면이 김석경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교수의 주거 철학을 만들었다.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30여 년간 주거학을 연구하며 현재 연세대 생활과학대 학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반지하부터 스마트홈까지 다양한 주거 현장을 관찰해왔다. 집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요즘, 그가 말하는 '진짜 좋은 집'의 조건을 들어봤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세대가 바꾼 집의 의미
김석경 교수의 철학은 1995년 석사 과정 연구에서 비롯됐다. 당시 홍대 앞과 서울대 근처에는 원룸 주택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이는 고시생과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새로운 주거 형태였다. 그러나 같은 구조와 면적의 원룸 주택이더라도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누군가는 그 작은 공간을 고시 공부방으로 삼았고, 또 다른 이는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는 여기서 집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는 방식'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실감했다.

김 교수가 청년이던 시절과 지금의 세대는 집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다르다. 예전의 30대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품었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는 여행도, 외식도, 취미 생활도 모두 포기해야만 집을 살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애초에 소유를 포기한다. 대신 셰어하우스, 코리빙, 구독형 주거와 같은 새로운 선택지를 찾으며, 집을 '투자 대상'이 아닌 '삶을 지탱하는 기반'으로 바라본다. 이제 집은 '소유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셰어하우스는 혼자 살더라도 넓은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신촌의 맹그로브 코리빙 하우스처럼 건축가가 설계한 세련된 공동주거 공간도 늘고 있다. 구독형 주거는 호텔처럼 관리와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집 관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반영한다. 부모 세대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과거에는 결혼 전 독립을 반대했지만, 이제는 자녀의 자립을 당연하게 여기며 적극 지원한다.

"예전에는 결혼하지 않은 자식이 작은 집에 나가 산다고 하면 부모가 말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생활비나 보증금을 보태주며 자립을 지원해 주죠. 자녀 세대 역시 예전과 달리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덜 느낍니다. 이제는 집이 결혼을 준비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각 세대가 자기 방식대로 삶을 시작하는 무대가 된 겁니다."


집은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거울 
코로나 팬데믹은 집의 기능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루아침에 집이 사무실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방 한구석에 책상 하나를 두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재택근무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에서 인기를 끄는 '알파룸'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크기는 작지만 수납공간을 넘어서 재택근무나 취미를 위한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재택근무가 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환경 역시 달라졌다. 거실 한쪽에 반려동물 놀이방이나 전용 가구를 두고, 외출 시 CCTV로 확인하는 사례가 보편화됐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생활하는 방식은 이제 반려인들에게 주거 설계의 중요 조건이다.

변화는 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 역시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민 도서관이던 공간을 부모들이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커뮤니티 시설에서 일하다가, 다시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와 일을 이어가는 풍경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다. 마치 소규모 비즈니스 센터처럼 생활 리듬에 맞춘 공간 활용이 자리잡은 것이다. 

디지털 혁명도 집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은 거실을 개인 영화관으로 만들었고, 젊은 세대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고를 수 있는 자유로움에 익숙해졌다. 이에 따라 거실은 휴식 공간을 넘어 개인의 문화와 취향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노인 주거 공간에는 단순한 담소의 공간을 넘어 독서, 노래, 미술 등 특화 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에 건강관리 시스템과 로봇청소기와 같은 스마트 장치까지 도입되면서 주거 공간의 기능이 한층 다양해졌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 해답으로 작용한다.

"집은 더 이상 식사와 수면을 위한 공간이 아니에요. 일과 학습, 여가와 돌봄까지 생활 전반이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죠. 따라서 주거 공간 하나가 변화하면 도시 인프라와 사회적 시스템까지 함께 변화하게 돼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결국 집은 사회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천 가지 라이프스타일, 천 가지 집
오늘날에는 1인 가구들도 저마다 다른 집을 원한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전문직, 중장년, 은퇴 노인까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주거 요구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과거 아파트 단지의 평면 유형이 6~7가지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같은 85㎡에서도 방을 2개로 나눌지 4개로 나눌지 선택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가벽도 활용한다. 생활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집도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Person-Environment Fit' 이론으로 설명한다. 환경 의식이 높은 사람이 친환경 주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환경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친환경 주택으로 이사한 후 태양광을 사용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면서 점차 환경 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이처럼 환경과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1970년대 모리스Morris와 윈터Winter가 제시한 '주거조절이론'도 흥미롭다. 사람들은 처음엔 집의 구조와 조건에 생활을 맞추려 하지만, 불편이 계속되면 공간을 손보고, 끝내 생활 방식과 공간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으면 이사를 택한다. 결국 집은 삶에 따라 끊임없이 조율되는 유연한 공간인 것이다.

이처럼 주거의 질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쾌적한 온도, 환기, 안전이 보장돼야 일상이 유지되고, 이런 조건이 무너지면 생활도 함께 무너진다.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져 있다면 반지하라도 충분히 자기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해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집과 값비싼 집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비싼 집이 아니라 쾌적한 환경에서 내 생활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거든요."

30여 년간 주거학을 연구해온 김 교수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하다.

"집을 자산이나 투자 대상으로 보기보다, 내 생활과 직업을 받쳐주는 공간으로 생각해야 해요. 투자를 하더라도 삶까진 내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집에서 살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서현지 HR Insight 기자
 
 
  • 리스트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