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HR Insight

정당한 지시도 괴롭힘일까? 새롭게 떠오른 ‘을질’ 문제

제호 : 2025년 9월호, 등록 : 2025-08-26 14: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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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팀원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흔히들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하면 직장 상사의 행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도입 이후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괴롭힘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지만, 이와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괴롭힘이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여겨졌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뒤바뀐 '역괴롭힘', 이른바 '을질'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실제로 역괴롭힘을 인정한 판례가 속속 나오고 있으며,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서도 '가장 많이 괴롭힌 가해자가 후임'이라는 응답이 2016년 2.7%에서 2023년 11.7%로 늘었다. 더 이상 예외적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역괴롭힘, 혹은 을질은 무엇이며,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례를 통해서 살펴본 '을질'
근로기준법 제76조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괴롭힘, 즉 을질 역시 행위자가 다를 뿐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유형이다. 관계의 우위성은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로 인정되는 경우로서,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개인 대 집단이라는 수적 우위성, 근속연수나 전문지식이 더 높은 데서 오는 업무 역량의 우위성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법원이 을질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판례의 상당수는 이 관계의 우위성을 근거로 판단했다.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업무와 관련된 정보 배제¹⁾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근무일정표와 비상근무조 편성 현황을 공유하지 않은 사례에서 법원은 의도적 정보 배제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가해자는 다른 직원들 앞에서 공공연히 피해자가 나이 어린 여자임에도 자신의 상급자로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고,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피해자가 포함돼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교대 완료 메시지를 남기지 않도록 지시하거나 다른 직원이 피해자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하자 "그걸 왜 알게 했냐"고 해당 직원에게 화를 내는 등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점이 판단 과정에서 고려됐다.

다른 직원과 합세한 따돌림²⁾
하급자가 선임자와 함께 상급자를 겨냥해 사내 메신저에 '미친X', '노답' 등 모욕적인 표현을 쓰고, 상급자의 질문이나 건의를 무시한 채 선임자와만 상의해 업무를 처리하며, 고의적으로 키보드 소리를 크게 내는 행동으로 배제감을 조성한 사례가 있었다. 법원은 이 같은 행위를 정상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 피해자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고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경력과 연령을 내세워 상급자에 대한 부당한 업무지시³⁾
일반 청원경찰인 가해자가 조장인 피해자에게 "인수인계 시 A직원으로부터 피해자가 무전기 안테나 덮개를 손괴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사실이면 원상회복이 필요하므로 조치해 주고, 사실이 아니라면 A직원에게 말하기 바란다"며 메일로 부당한 업무지시와 비꼬는 발언을 하며 권한을 무시했다. 피해자인 조장이 대면 대화를 요청했으나, 가해자는 경력과 연령을 내세워 거부했다. 나아가 "피해자의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미칠 지경"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해 상사 및 감독 권한을 전면 부정했다. 법원은 이러한 행위를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상의 우위를 이용해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을질',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기존에 흔히 접하던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즉 상급자에 의한 괴롭힘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지만, 결국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 정의 안에 포함된 경우였다. 그렇다면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않는 '을질'은 무엇일까?

'을질'에 대한 정확한 뜻을 찾아본 결과, 사전에 명시된 명확한 정의는 없고, 일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서 정당한 업무지시나 요구 등을 거부하거나, 이를 '갑질'로 주장하는 행위⁴⁾라고 정의한 정도였다. 따라서 합의된 정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을질'은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업무지시 거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오남용, 정당한 피드백을 '갑질'로 몰아가는 행위 등 정당한 지시와 괴롭힘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 놓인 상황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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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미 노무법인 미담 대표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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