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는 큐레이터의 언어로 구축된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과 작품을 잇는 서사를 구성하고, 동시대의 감각과 호흡하며, 작가와 함께 작업 세계를 조율해 나가는 또 다른 작업의 과정이다. 이러한 전시 철학을 바탕으로, 추성아 큐레이터는 기획자의 언어로 시각 예술을 풀어내며 자신만의 전시를 완성해왔다.전시, 큐레이터의 또 다른 작품 추성아 큐레이터는 실기 전공자로 예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예고를 졸업하고 회화와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재료의 물성을 익혔다. 전시 기획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부 시절,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 기획 프로젝트가 시작이었다. 각자의 작업을 모아 전시 제목을 정하고, 전시 장소를 선정해 직접 구성하면서 처음 전시 기획을 경험했다. "단순히 작품을 걸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기획한 주제에 맞춰 작업들을 어떤 맥락 위에 어떻게 배열할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하나하나 직접 결정해야 했죠. 학교 캠퍼스 곳곳의 건물 구조와 분위기를 살펴 공간의 특징을 반영해 설치 방식을 고민했고, 전시를 설명하는 서문을 위한 리플렛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전시의 흐름, 관람자의 동선, 서사 구성을 고민하며 그는 전시가 단순한 결과물 나열이 아닌 하나의 작품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미술사 복수전공과 대학원 진학, 미술관 인턴십을 거쳐 큐레이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됐다. 실기 전공자였던 그는 조형 언어나 작업 리듬, 미술적 고민에 익숙해 작가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이는 작가와의 협업에서도 중요한 강점이 됐다. "전시를 기획하는 건 저의 '작업'이기도 해요. 작가에게 신작을 제안하고, 방향성을 함께 잡아가는 건 기획자이자 동료로서 가능한 일이죠. 작업 언어가 낯설지 않기 때문에, 작가와 함께 논의하며 더 확장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대화가 기술적인 피드백으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전시에 담길 질문이나 메시지까지 함께 고민하는 식이죠." 그는 큐레이팅을 작품과 작품, 작가와 관객, 주제와 시대를 잇는 '하나의 연결'로 정의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답을 강요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하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질문이 시작점이 되는 전시를 만들고 싶어요. 정답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는 탐색의 과정을 열어두는 거죠." 기억에 남는 전시를 묻자, 그는 2021년, 소규모로 진행한 전시인 <스나크 :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렸다. 갤러리2에서 서울시 기금을 받아 기획한 이 전시는 '불안'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주제로, 루이스 캐럴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됐다. 실체 없는 존재를 추적하는 항해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아, 다섯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불안의 실체를 탐색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며 이 전시를 준비했어요. 전시를 통해 제 감정을 정리하고, 동시에 많은 미술계 동료들이 공감해 준 것이 기억에 남아요. 제 전시가 자전적 회고이자, 시대와 감정을 공유하는 장場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감각을 묶고, 언어로 풀다 전시 기획과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공간을 구성하고 작업을 배치하는 시각적 설계뿐 아니라, 관객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감상할지에 대한 가이드를 언어로 제공하는 것 또한 기획자의 몫이다. 실제로 그는 다수의 전시 서문, 작가 리뷰, 비평 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결국 감각을 다루는 일이지만, 글은 그 감각을 언어로 지지해주는 장치예요. 전시마다 글의 무게와 방식이 달라지지만, 결국 핵심은 관객이 보다 유연하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이처럼 때론 전문적인 미술적 표현을 통해 높은 밀도의 글을, 때론 에세이 같은 서술을 통해 작품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미술계 내부와 외부를 잇는 다리로서 '언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특히 언어가 '전시의 첫인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시의 서문과 작품 옆에 붙는 캡션 하나가 관람자의 해석을 결정짓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을 쓰느냐에 따라 관객이 작품 앞에서 멈추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쓰고, 더 오래 고민하게 됩니다." 그는 전시를 기획할 때 "내가 지금 이걸 왜 하려고 하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기획은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왜 하려는가'에서 출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큐레이팅은 결국 '질문'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그 질문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구성과 형식이 따라오죠." 다시, 나아가기 위한 쉼표 최근 독립 큐레이터로 돌아온 그는,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기 위한 시간 속에서 다음 스텝을 준비 중이다. 문학을 읽고, 걷고, 기록하는 일상을 통해 감각을 회복하고, 언어로 사고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다. "지금은 과도기예요. 다음 전시를 선뜻 기획하기보다는, 다시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반응하고 싶은지를 천천히 바라보는 시기죠." 그는 이 시간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가 왜 기획을 하고 싶은지'를 되묻는 탐색의 시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을 회고하고, 나아가기 전에 잠시 멈추는 태도는 기획자로서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가 천천히 축적하고 있는 건 기획의 주제나 메시지뿐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이기도 하다. "전시라는 건 결국,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요즘엔 세상보다 제 안을 더 들여다보게 돼요." 작가의 세계에 귀 기울이고, 언어로 전시를 해석하며, 기획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사람. 추성아 큐레이터의 다음 전시는 분명 다시 한 번 묵직한 질문을 품고 우리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사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제게는 '일'로 느껴진 적이 없어요. 제 인생은 늘 '예술'과 함께 해 왔고, 그게 제 큰 기쁨이었으니까요. 전시를 만들기 위해 작가들과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쓰고, 공간을 설계하는 시간이 오히려 저를 살아 있게 만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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