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사람의 기억은 흐려지고 목소리는 흔들리지만, 영상은 끝까지 '진실'을 말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기록한 진실은 때론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법영상분석 전문가인 황민구 법영상분석연구소 소장은 매 순간 영상 속에서 숨은 단서를 찾아내고,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간절함'이 만든 길 황민구 소장의 인생을 바꾼 것은 아버지가 남겨주신 오래된 수동 카메라 한 대였다. 카메라의 작동법을 익히기 위해 사진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그는 카메라와 인연을 맺었다. 본래 건축 설계를 전공한 그는 학부 시절 여러 건축물을 답사하고, 유명한 건축물과 모형을 촬영하며 사진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 "학부 수업에서 유명한 건축물을 리뷰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제 사진을 보시고 '건축 잡지에 있는 사진 같다'며 칭찬을 하셨어요. 그게 소문이 나면서 과제나 졸업 전시 모형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사진에 빠져들게 됐죠.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카메라가 제 법영상분석 여정의 시초가 된 것 같아요." 이후 사진에 대한 흥미를 갖고 예술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밟았지만, 학업에 매진할수록 순수 예술의 영역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느껴졌다. 사진에 의미를 담거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담아낼 때 더 큰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과학 사진과 건축물 사진에 몰두하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영상학 박사과정으로 이어졌다. 황 소장이 박사과정을 시작했을 당시, 대검찰청에서는 사진, 영상의 위변조가 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위변조를 식별할 수 있는 용역 발주가 활발히 들어왔고, 황 소장은 국내에서 전례 없는 위변조 검출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국내에서는 영상분석에 관한 연구가 진척되지 않아 해외 논문을 하나하나 읽고 분석하며 국내 영상분석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월요일이면 연구의 진척 상황이나 결과에 관해 발표해야 했는데, 월요일이 오는 게 너무 무서워서 일요일만 되면 술을 마셨어요. 너무 프로젝트에 몰두하다 보니 꿈에서도 연구하고 있더라고요. 나중에는 꿈에서라도 해결하면 그 알고리즘을 받아 적으려고 노트를 옆에 두고 잠들었어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연구소로 출근해 밤늦게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밤 11시가 돼야 집에 들어와 다음날의 연구를 걱정하며 몰두한 지 5년, 결국 국내 최초로 영상 위변조 검출 알고리즘을 개발해 냈다. "영상 위변조 검출 알고리즘을 개발했던 때가 아직 생생해요. 국내 최초로 이러한 알고리즘을 개발했단 걸 깨달은 순간 희열과 함께 아내가 떠올랐어요. 힘든 연구 과정에도 묵묵히 옆을 지켜준 아내에게 처음 성공 소식을 전했고,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죠. 이는 '간절함' 끝에 얻은 성과였고, 그 간절함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됐죠." '진실'이라는 책임감의 무게 지난 2013년, 황 소장은 자신이 쌓아온 연구 성과와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법영상분석연구소를 개소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영상분석은 생소한 분야였다. 의뢰는 드물었고, 어렵게 영상을 분석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해도 판사와 검사는 영상분석의 신뢰성을 의심했다. 결국 황 소장은 '철저한 준비'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밑장빼기 영상을 분석할 땐 하루 종일 유형과 패턴을 공부하고, 명품 가방의 진위 여부를 분석할 땐 명품에 관한 자료를 논문 수준으로 수집했어요. 클럽 성추행 사건을 맡으면 클럽에서 의뢰인이 추고 있던 노래와 안무를 외우기도 했죠. 제 일상을 의뢰인의 일상으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결국 진실을 찾는 과정의 시작은 '관심'이니까요." 점차 황 소장의 명성이 높아지고 사건과 의뢰인이 늘어가며, 황 소장은 기술의 진보가 아닌 또 다른 성장을 해야 했다. 일부 의뢰인들은 자신이 타인을 폭행한 영상을 들고 와, 사례를 할 테니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황 소장은 그런 의뢰인들에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말한다'는 단단한 신념을 세웠다. "갖은 회유, 협박과 투쟁하기 위해 저는 '진실'을 택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영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영상에서 본 그대로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전 그들의 변호인이 아니라, 영상의 대변인이기 때문이죠." 대법원 특수 감정인 등재, 해외 저명 학술지에 논문 게재, 그리고 특허 보유까지 다양한 업적을 이뤄낸 황민구 소장이지만, 그가 가장 뜻깊게 여기는 성과는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순간이다.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은 후, 이를 무죄로 뒤집을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확률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황 소장은 영상 속에서 그런 기적 같은 보물을 찾아내곤 한다. "많은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간절함을 느끼게 되면, 그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기도 해요. 그래서 의뢰에 있어서 '대면 상담'은 필수적이죠. 그냥 알고리즘에 영상을 넣는다고 모든 게 도출되지는 않아요. 결국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은 '사람'과 '사건'을 경험하며 쌓이는 거죠." '장인'으로서 다할 소명 황민구 소장은 지난해 12월, 대학 후배 '선희'의 죽음의 궤적을 따라 진실을 찾아가는 장편소설 《선희》를 출간했다. 소설 속 선희는 실제 세상을 떠난 황 소장의 대학 후배다. 이 작품을 통해 황 소장은 사람 간의 신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의심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요. 연구소를 찾은 의뢰인 대부분은 경찰을 못 믿고, 배우자를 못 믿고, 법원을 못 믿어서 저를 찾아와요. 그러나 영상을 분석해서 진실을 말해줘도, 이미 자신이 품은 의심에 사로잡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의심이 들 땐 잠시 멈추라는 겁니다. 진실은 결국엔 드러나게 돼있으니까요." 10여 년간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그는 꿋꿋이 버텨왔다. 국내 최초로 영상 위변조 검출 알고리즘을 개발할 때도, 연구소를 세우고 법정에서 편견에 맞서야 했을 때도, 돈으로 자신을 회유하려는 의뢰인을 마주했을 때도 '포기'라는 단어를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법영상분석을 하며 수많은 의뢰인과 함께 울고, 웃고, 억울해하며 많은 성장을 해왔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소명 중 하나는 후학 양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제자들에게 진실을 보는 법을 가르치고, 훗날 그들이 시련을 마주했을 땐 제가 가장 앞에 서서 방어해주는 역할을 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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