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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고령자, 노령자, 어르신, 시니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선호하는 단어는 '시니어'인 듯하다. '노인'은 누군가의 부양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처럼 느껴지지만, '시니어'는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노인과 시니어를 다르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통합검색을 하면 광고비가 부과된 파워링크 중에서도 요양시설과 재활센터가 가장 앞 순위로 소개되는 반면, 똑같은 대상인 '시니어'를 검색어로 넣으면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과 일자리 사이트가 눈에 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복지 향상을 위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는데, 이때 조사 대상자를 '폐지 수집 노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폐지 줍는 시니어는 왠지 어색하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 마케팅을 할 때도 노인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이처럼 '노인'과 '시니어'의 쓰임새는 달라졌다. 아마도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보통의 중장년층은 자신이 '노인'보다 '시니어'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 은퇴가 성립하지 않는 나라 우리 사회가 노인을 '시니어'로 부르기를 선호하게 된 것은 이들이 인구의 '주류'가 됐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한국은 '초고령 사회' 타이틀을 얻기에 이르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됐던 1988년을 생각해보면 덕선이 같은 10대는 전체 인구의 1/5, 20대도 전체 인구의 1/5에 달했다. 그 당시 60대는 전체 인구의 1/20도 안 되는 비중이었고, 70대와 80대 이상의 인구는 60대보다도 훨씬 적은 희소한 존재였다. 지금은 거꾸로다. 2024년 60대 인구 비중(14.9%)은 20대 인구(12.3%)를 능가했고 10대는 더 귀하다.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수많은 젊은이와 소수의 노인으로 구성된 세계'를 전제로 하고, 연금제도 역시 젊은이가 다수인 사회에서 운영이 됐던 것인데, 이렇게 따지면 우리나라는 은퇴가 성립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 가는 셈이다. 기업에서는 진작 일할 젊은이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아예 시니어를 채용하거나 시니어 고용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술이 중요한 회사는 인재가 나이를 이유로 떠나는 것이 아쉬워 이들이 회사 업무를 지속할 수 있게 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공석이 생기면 퇴직자를 다시 채용하기도 한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적용해야 하는 '정년'이 여전히 60세이고, 노조가 있는 경우 반발을 우려해서 적극적으로 시니어를 채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정년 연장이 본격화되고 시니어 고용의 효용을 누려본 기업들이 확산되면 시니어 근로자는 젊은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특별하지 않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시니어의 경험은 값진 자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믿는 CEO라면 이제 시니어 인력 시장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의 시니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대학 졸업자 비율이 월등히 높고, 건강하며, 디지털 업무 처리에도 능숙하다. 기업에서 장기간 근무한 시니어들도 많기 때문에 이들의 경험과 노련함은 값진 자원이다. 시니어 개인이 한평생 구축해 둔 인적 네트워크와 포괄적인 시각도 상당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HR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시니어 고용을 통해 얻게 되는 기업의 성과를 정리해서 발표했다. 특히 시니어 인력은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전반적인 성과를 높인다는 실증 분석 결과들이 많다. AARP(미국은퇴자협회)는 시니어와 젊은 근로자가 섞여 있는 팀은 단일 세대로 구성된 팀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점을 언급했고, OECD는 시니어의 경험이 젊은 근로자의 업무 수행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니어는 조직구성원들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조직 안정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딜로이트Deloitte는 5년 이상 회사에 재직할 의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나이 든 사내 멘토가 있을 가능성이 68% 높다고 발표했고, OECD는 타사 대비 시니어 비율이 높은 기업은 이직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니어는 지식 공유 및 멘토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머서Mercer는 회사의 감성 지능을 높이며 지식을 원활하게 공유하고, 구성원 간 멘토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시니어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의 존재는 조직 응집력, 협업 및 탄력성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시니어를 적극 활용 중인 글로벌 기업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한 글로벌 기업들은 인력 문제 관련 전략을 개발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령 인력을 계속 고용하거나 퇴직자를 다시 채용하기도 한다. 독일과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전부터 청년층 인력부족을 겪었던 나라다. 일부 기업은 시니어에 적합한 제조시설 변경, 시니어를 고려한 직무 재편을 통해 시니어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BMW의 경우 2007년, 니더바이에른 딩골핑에 위치한 공장 책임자가 미래 노동력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파일럿으로 공장 생산 라인 한 개를 10년 뒤의 인력 구조로 배치했고, 기술 전문가 등의 지원을 받아 생산성과 관련된 70가지 작업 환경을 개선했다. 예를 들어 특수 의자를 설치해 작업하거나 휴식을 취하게 하고, 근로자들이 관절의 긴장도를 낮추는 신발을 신게 하면서 체력 손실을 줄이는 등 인체공학적 설비를 적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라인의 생산성이 1년 만에 7%나 향상됐으며, 이후에는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공장에서 이를 더욱 정교화해 글로벌 전체 제조시설로 확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세계 최대의 지퍼 제조업체인 일본의 YKK도 고령화에 적극 대응한 기업이다. YKK는 연령에 따른 퇴직은 '공정'을 중시하는 회사 이념과 맞지 않다는 판단으로 장기간의 준비를 거쳐 2021년에 정년제를 폐지했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일찍이 일하는 방식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사원에게는 자율을, 회사는 공정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다양한 인력구조를 도입했고, 역할을 기준으로 성과주의, 실력 우선주의를 적용했다. 직원이 63세가 되면 커리어 면담을 통해 65세 이후 근무 의향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취업 의사가 있으면 일의 내용과 일하는 방법을 확인한다. 그리고 65세 이전 또는 이후에 같은 직무를 담당하면 동일한 처우를 제공한다. ... 중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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