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길이 곧 나의 행복"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손짓과 몸짓, 표정을 활용해 의사소통하는 시각 언어인 수어. 그저 농인들의 언어라고만 생각됐던 수어는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 수어의 매력을 느끼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래의 가사를 수어로 표현하는 수어아티스트, 사오리의 손짓과 몸짓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곧 나의 행복"
제호 : 2024년 12월호, 등록 : 2024-11-21 11:30:17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손짓과 몸짓, 표정을 활용해 의사소통하는 시각 언어인 수어. 그저 농인들의 언어라고만 생각됐던 수어는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 수어의 매력을 느끼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래의 가사를 수어로 표현하는 수어아티스트, 사오리의 손짓과 몸짓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농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임에도 관심 갖지 못했던 한국의 수어와 그 매력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나의 길을 개척하다
고등학교 해외연수를 통해 한국에 방문했던 사오리 수어아티스트는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고 자극받아 자신도 한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K팝에도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한국어를 꾸준히 배운 덕에 엔터테인먼트사에 취직해 한국어 통역을 하는 등의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원했던 연예계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는 목표는 이뤘지만, 앞으로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맞닥뜨렸다.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그는 한 소속사 대표에게 한국에서 활동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와 함께 평창 올림픽과 페럴림픽에서 일본 대표 홍보대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았다. 세계적인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했고, 평창 올림픽, 페럴림픽에서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이를 통해 성화 봉송을 하거나 다양한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수어 통역이었다. 페럴림픽 현장에서 수어를 통역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수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일본인이 한국의 수어를 배운다면 희소성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의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의 활동을 준비하고 있던 사오리 수어아티스트는 자신이 배운 한국 수어와 음악을 접목해 공연하면 농인과 청인, 그리고 전 세계가 즐기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수어 공연을 기획했고, 그렇게 수어를 예술로 표현하는 수어아티스트로서 새로운 문화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수어 통역사에게 감수받은 내용을 외워서 공연했어요. 그런데도 제 공연을 본 분들이 감동의 마음을 전해와 정말 감사했고, 그때 단순히 가사를 통역하고 외우는 게 아니라 직접 노래의 감정과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수어로 전달하며 아티스트로서 저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수어아티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수어아티스트의 길
수어아티스트라는 길을 개척한 선봉장으로서 사오리 수어아티스트는 참고할 사례가 없어 모든 것을 스스로 정립해야 했던 탓에 고민할 부분이 많았다고 밝혔다. 특히 노래 가사는 청인들이 듣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수어와는 어순이 다른 데다 공연할 때는 실제로 사용하는 수어보다 안무적인 요소가 들어가 실제 수어와는 다소 차이가 느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대중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 수어 아티스트가 한국의 청인들도 잘 배우지 않는 한국의 수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농인들이 고맙다는 응원을 건네준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교육원에서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수어를 배우면서 장애인 복지, 청각 장애인의 이해 등 농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했어요. 수어만이 아니라 농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했던 것을 많은 농인들이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후 노래의 가사를 해석하고, 박자에 맞게 표현할 수 있도록 수어로 통역, 창작하는 활동을 이어간 그는 이제 수어 통역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수어 공연을 창작하는 진정한 수어아티스트로 성장했다. 농인들이 노래 가사의 내용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노래에 담긴 감정도 느낄 수 있도록 수어 공연을 창작하고 있다는 그는 수어가 자신의 정체성이 됐다고 전했다.

"농인들과 수어로 소통할 때면 수어 배우길 잘했다고 느껴요. 청인들이 수어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수어를 배운다면 농인들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수어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저도 수어를 알릴 수 있도록 꾸준히 활동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도전과 앞으로 이어갈 도전
지금은 수어아티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도 한때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한국으로 터전을 옮겨 수어아티스트로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을 하면서 사는 게 곧 나의 행복"이라는 진심을 전하며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오리 수어아티스트는 지난 2021년,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을 통해 축구에 도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한국에서 수어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것도, 축구를 시작한 것도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밝혔다. 

"수어아티스트로서 계속 도전하고, 공연을 선보이면서 농인과 청인 모두가 자신의 행복이 뭔지 고민하고, '나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러한 바람이 저에게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도전을 발판삼아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그가 도전하고 노력함으로써 그의 자양분이 되어준 한글, 수어, 서예, 축구 등의 분야에 더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는데, 실제로 그는 한국수어통역사 필기시험에 외국인 최초로 합격한 후, 최종 합격을 위해 다년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어아티스트로 한걸음 성장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일본인으로서 한일 관계의 다리가 되어 문화 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누군가는 알아주고, 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앞으로도 노력만큼은 1등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성장할 겁니다."
윤은선 HR Insigh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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