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해외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방문지 중 하나가 바로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역사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으레 꼭 한 번씩은 들러보는 곳이다. 그러나 작품이 그려지고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않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도슨트Docent'는 작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안내인으로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 재미있게 지식을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 지식의 깊이와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모두 지녀 관객을 사로잡은 이가 있다. 안현배 미술사학자다.파리 1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프랑스 근대 정치 문화사로 시작해, '아나키즘Anarchism'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다시 예술사학과에서 프랑스 근대 예술사로 전공을 변경해 석사 학위를 재취득하며 박사 학위까지 수료한 그는 미술사학자로서 철저한 검증과 수많은 지식 습득의 과정을 거쳐왔기에 단순 스토리텔링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그가 스토리텔러가 아닌, 미술사학자인 이유다. 그 내공이 분명 관객에게도 느껴졌을 터, 그가 진행한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인 '시네 도슨트Cine Docent'는 연일 매진 횡렬을 기록했다. 이처럼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적신 그에게,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우연한 사건이 만든 미술사학자로의 길 프랑스 유학은 계획조차 없었던 아주 오래전, 배낭여행으로 프랑스를 방문했던 그는 폐장 시간을 1시간 앞두고 가까스로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새하얘진 머리로 다급히 박물관 안내인에게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물은 그림은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이었다. 불현듯 떠올린 작품이었지만, 막상 안내인에게 등 떠밀려 가까이 가보니 선명한 붓자국이 보였다. 순간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자리했던 그림은 100년도 더 전에 살아있는 누군가 오랜 고민을 담아 그린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보다 가까이에서,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림을 그리며 고민한 흔적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전에 배운 지식들은 모두 필요 없이 그 순간 시대를 넘어 그림을 그리며 고민하고 있는 들라크루아의 모습이 느껴졌다"며 그 경험으로 예술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길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다만 "사람은 사건들이 만드는 것"이라며 "스스로 인지하느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느냐, 혹은 바빠서 잊어버리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런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도 지금의 방향으로 길을 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학 시절의 유일했던 취미 생활도 그 사건의 하나가 됐다. 힘들 때면 미술관에 방문해 사람이 없는 칸에서 종일 앉아있곤 했는데, 문득 스친 생각에 전공을 역사학에서 서양예술사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술 작품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역사는 참으로 추악하고 잔인한데, 그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예술 작품이라고 느꼈다"며 "그 계기로 예술 작품 안에서 역사를 통해 사람의 흔적을 좇을 수 있는 예술사를 공부할 것을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장 쉽게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예술 작품을 매개로 다양하게 강연을 진행해왔다. 그는 프랑스 유학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볼 만한 전시를 추천해달라고 묻던 프랑스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태도는 그때에도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테면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예술 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전시회를 추천하면 꼭 방문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식을 과소평가하며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으로 항상 그가 권하는 것은, "한 전시회에 가서 그 전체를 파악하려는 목표를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예술 작품을 본다거나 미술관을 둘러보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하기를 권한다"며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라도 찾게 된다면 그것이 1년에 다섯 번, 2년에 열 번의 경험이 되고 좋아하는 작품이 자연스레 늘어가면서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부처럼 접근하기보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모아간다는 생각으로 해나가면 예술은 어느 순간 위로와 기쁨을 주는 것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PG) 한번은 프랑스를 방문한 한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지순례 가이드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인상깊은 경험을 했다. 한 할머니께서 애타게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감동을 받아, 할머니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한 모두가 함께 아트샵에서 기념품을 구매해가는 등 작품과 인연을 맺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경험으로 "예술 작품이란 시대, 언어, 환경의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진심을 전달하고 또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작품이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것으로 남으려면, 이처럼 작품과의 인연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예술 작품이 비로소 우리에게 살아있는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Un Pas'로 예술 작품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 그가 인문학을 통해 예술 작품을 설명해오고 있는 이유다. 예술 작품도 일종의 언어로서 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통해서야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좋은 예술 작품이란 "잊고 지냈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애정이 생기도록 만들며, 계속해서 머릿속에 담고 싶도록 만드는 작품"이라며 이런 작품들을 찾아 하나씩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가게 되기를 권했다. 그리고 자신은 오랜 기간 예술사를 공부해왔기에 검증된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각을 전달함으로써, "한국 사람들의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예술 작품을 향한 관심을 바탕으로 'Un Pas', 프랑스 말로 '한 걸음'만 더 그쪽으로 손을 뻗어보면,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예술 작품과도 더 가까워질 수 있기에 "예술 작품은 분명 감상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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