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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잔류의 시대,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남아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AI 확산으로 직무가 재구성되면서, 구성원이 업무와 조직에 대해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몰입'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몰입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행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몰입을 관리하려고만 했지, 측정하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몰입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jpg) 관계·조직·직무라는 렌즈가 필요한 이유 몰입은 성과를 예측하는 선행지표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몰입을 캠페인과 복지, 혹은 직무만족의 연장선에서 단순한 접근 방식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제도를 늘리고 이벤트를 강화하며 구성원의 만족을 높이면 단기 반응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의 실제 경험인 업무의 의미, 팀에 대한 신뢰, 조직 목표에 대한 공감이 바뀌지 않으면 효과는 금세 소진되고 만다. 더 큰 함정은 이른바 '점수 중심 몰입'이다. 한 번의 설문으로 평균 점수를 만들고 전년 대비 상승과 하락 수치만을 파악한다. 하지만 같은 점수라도 내용은 다를 수 있다. 높은 점수가 의미하는 바가 '성장 에너지'일 수도 있고, '소진을 동반한 버팀'일 수도 있다. 반대로 중간 점수라도 관계 기반의 안정적 몰입을 뜻할 수 있다. 점수만 보면 처방이 어긋난다. 몰입은 점수의 이면을 먼저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직원몰입 진단 도구를 활용하나, 국내 기업에 그대로 적용할 시 진단 결과의 신뢰도와 타당도가 낮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조직에서는 개인과 직무 중심 척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관계'와 '조직'이 직무몰입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보지 않으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구성원 몰입을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구조 위에서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휴먼인게이지먼트연구소HEI는 한국 조직의 몰입을 관계·조직·직무라는 3차원의 결합 경험으로 재구성해 제시한다. 핵심은 '세 점수의 합'이 아니라 세 차원이 함께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는 데 있다. 데이터로 본 한국 기업의 몰입 작동 방식 HEI에서 국내 11개 산업군, 213개 민간기업의 종사자 1,7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적자원 몰입 패널' 조사 결과는 관계·조직·직무라는 3차원 관점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첫째, "한국 기업 구성원은 몰입하지 않는다"는 통념은 과장돼 있다. 5점 만점에 성과 몰입 3.55점, 관계 몰입 3.81점으로 약 70%가 일정 수준 이상의 몰입 상태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몰입은 분위기 지표가 아니라 경영지표다. 몰입 상·하위 25% 집단 간 성과는 1.25배 차이를 보였고, 이직 의도도 차이가 관측됐다. 따라서 HR이 몰입을 가볍게 보면 비용과 성과에서 무거운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둘째, 몰입은 대체로 관계에서 시작해 성과로 이동한다. 신뢰와 정서적 안전감이 먼저 깔릴 때 성장과 성과가 따라온다. 연초에 목표를 더 강하게 강조했는데 조직의 행보는 오히려 느려지고 무거워졌다면, 대개 이 순서를 거꾸로 밟은 결과다. 셋째, 세대와 집단별로 몰입의 위기 신호는 다르게 나타난다. 30대는 몰입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번아웃 위험 또한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몰입을 강조하는 만큼 소진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임과 신입급은 가장 낮은 몰입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온보딩의 문제가 아니라, 입사 초기의 첫 업무가 '성장 과제'가 아닌 '잡무'로 해석되는 순간 시작되는 일과 관계 설계의 실패 신호일 수 있다. 넷째, 자율성은 강력한 레버다. 자율성이 높은 집단의 몰입은 1.4배, 몰입 지속 확률은 26% 더 높았다. '권한 위임'이 선언으로 끝나면 효과가 없다. 자율성은 문화 구호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영향 변인으로 다뤄져야 한다. 다섯째, 디지털 전환에서 상사의 디지털 리더십은 구성원의 몰입에 큰 영향을 준다. 상사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간 수준일 때 몰입이 가장 낮게 나타났는데, 기준과 방식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요구만 늘어 혼란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역량 있는 구성원에게 권한과 책임을 함께 위임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 2026년 HR의 과제, '성장 지향적 몰입 설계' 디지털 대전환과 AI 시대에 필요한 몰입은 '성장Growth 지향적 몰입'이다. 변화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자신의 역할을 갱신하며,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상태다. 이 같은 몰입은 적응Adaptation과 주도성Proactivity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적응은 변화 속에서 버티고 배우는 힘이고, 주도성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힘이다. 적응만 높으면 '순응형 잔류'가 되고, 주도성만 높으면 '충돌형 열정'이 된다. 지속가능한 몰입은 두 축이 함께 작동할 때 형성된다. 따라서 2026년, HR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몰입을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몰입을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많은 조직이 몰입을 측정하지만,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몰입 점수만 보고 끝내기 때문이다. 이제 진단은 '패키지'가 되어야 한다. 첫째, 몰입을 관계·조직·직무로 구분해 상태를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둘째, 개인·직무·리더십·조직 차원의 영향 변인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셋째, 성과, 이직 의도 등 다양한 결과 변인 중 무엇부터 바꿀지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이때 조직 내부 데이터만으로는 기준이 흔들리기 쉽다. 산업·규모·직급별로 비교 가능한 외부 벤치마크가 더해지면, 진단은 곧바로 경영 언어가 된다. '우리 회사는 어느 수준인가'가 아니라 '우리 회사는 어떤 유형의 몰입이 강하고 약한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연초의 몰입은 결심으로 오지 않는다. 측정에서 시작해 설계로 완성된다. HR이 올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성원에게 "몰입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몰입을 정확히 읽어내는 일이다. 그 순간부터 몰입은 캠페인이 아니라 성과 전략이 된다. * 송해덕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구성원 몰입Engagement 진단과 AI 기반 맞춤형 설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육공학회장, 중앙대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장, 휴먼 인게이지먼트 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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