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설계하는 일의 피로를 줄이는 오피스
오후 3시만 되면 오피스 전체가 가라앉는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뇌과학으로 설계하는 일의 피로를 줄이는 오피스
제호 : 2026년 7월호, 등록 : 2026-06-23 14:43:46



오후 3시만 되면 오피스 전체가 가라앉는 느낌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식곤증이나 업무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과학에서는 사람을 더 빨리 지치게 하는 원인을 일의 양이 아니라 하루 종일 머무는 공간에서 찾는다. 우리 뇌의 전전두엽이 사용하는 인지 자원은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한정돼 있는데, 잘못 설계된 오피스가 이 에너지를 업무가 아니라 '환경을 견디는 데' 소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피스의 빛과 공기가 일하는 뇌의 연료를 좌우한다
대부분의 오피스는 하루 종일 6,000K 안팎의 차갑고 흰빛을 동일하게 유지한다. 문제는 뇌의 생체 시계가 빛의 밝기뿐 아니라 색의 변화까지 함께 인식한다는 점이다. 푸른빛이 강한 조명은 뇌를 각성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는 반면, 따뜻한 색의 조명은 긴장을 완화하고 휴식을 유도한다. 이에 따라 하루 종일 같은 색온도 아래 머물면 생체리듬이 흐트러지고 수면의 질도 저하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서카디안 조명Circadian Lighting'이다. 자연광의 변화처럼 시간대에 따라 조명의 색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오전에는 5,500~6,500K의 밝고 푸른빛으로 각성과 집중을 돕고, 늦은 오후에는 2,700~3,200K의 따뜻한 빛으로 전환해 뇌가 자연스럽게 휴식 모드로 들어가도록 한다. 

빛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공기다. 밀폐된 회의실에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빠르게 상승한다. 농도가 1,000ppm을 넘기기 시작하면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공간이 오히려 사고가 둔해지는 공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600~800ppm 수준으로 유지하고, 1시간 이상 회의를 할 때는 짧은 환기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 좋다.


오피스 자리 배치로 뇌의 집중력을 지킨다
개방형 오피스는 구성원 간 소통과 협업을 늘리기 위해 도입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기대와 다를 수 있다. 조직행동론 연구자인 에단 번스타인Ethan Bernstein과 스티븐 터번Stephen Turban의 연구에 따르면, 칸막이를 없앤 기업에서 오히려 대면 소통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벽을 없애면 협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통념이 데이터로 뒤집힌 셈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공간에서는 안정감을 느끼지만, 지나치게 넓고 열린 공간에서는 시선과 소음이 지속적으로 주의를 분산시킨다. 따라서 사무공간이 넓을수록 작은 구역으로 나누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의 수와 소음을 줄일 필요가 있다.

자리 배치 역시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등 뒤가 보호되고 주변을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는 위치에서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따라서 책상은 벽이나 파티션처럼 등 뒤를 보호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곳에 배치하고, 시선은 출입구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요소는 주변시Peripheral Vision다. 사람의 시야 가장자리는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동료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포착되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빼앗긴다. 이러한 짧은 방해가 반복되면 다시 집중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따라서 책상은 주 통행로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도록 배치하는 것이 좋다. 이때 파티션은 앉았을 때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면서도, 일어섰을 때는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120~135cm 높이가 적절하다. 또한 깊은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구성원을 위해 세 면이 둘러싸인 별도의 집중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뇌의 집중과 회복에는 서로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
혼자 깊이 몰입하는 공간과 활발하게 협업하는 공간은 서로 다르게 설계돼야 한다. 천장 높이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캐세드럴 효과Cathedral Effect'에 따르면 낮은 천장은 세부 집중을, 높은 천장은 창의적 사고를 돕는다. 따라서 오피스 천장은 집중 구역과 협업 구역으로 나눠 그 높이를 다르게 하고, 좌석 역시 직급이 아니라 업무가 요구하는 집중과 소통의 정도를 고려해 배치해야 한다.

협업 구역을 설계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빛'과 '가구의 유연함'이다. 펜던트 조명을 낮게 설치하면 빛이 닿는 범위가 제한되면서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뇌는 그 영역을 '우리만의 공간'으로 인식해 열린 환경에서도 대화에 더 잘 몰입하게 된다. 가구는 고정된 긴 테이블보다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모듈형 구조가 적합하다. 이를 통해 각자 업무에 집중하다가도 필요할 때 쉽게 모여 협업할 수 있다.

휴식은 오후의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회복 과정이다. 뇌는 집중 상태와 정보를 정리하는 상태를 오가며 균형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 정리되고 다음 집중을 위한 에너지가 회복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피스 휴게공간은 밝은 조명과 지속적인 소음, 자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뇌를 계속 각성 상태에 머물게 한다.

진짜 회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등이 보호되고 머리 위가 어느 정도 가려진 공간에서 안정감이 높아진다. 세 면이 막힌 작은 공간이나 등받이가 높은 의자가 좋은 예시다. 둘째, 자연을 볼 수 있는 시야나 식물 같은 자연 요소는 긴장을 완화하고 주의력을 회복시킨다. 셋째, 소음을 줄이는 흡음 설계와 2,700K 이하의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은 뇌에 안정 신호를 준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 공간에서 점심식사 후 10분만이라도 화면과 소음에서 벗어나면 오후의 피로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 


오후 3시에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는 결국 공간이 하루 종일 뇌에 보내는 신호의 결과다. 공간은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작동하는 경영 도구다. 화려한 리모델링이 아니더라도 조명 색을 시간대에 맞춰 바꾸고, 회의실 환기를 습관화하고, 파티션 높이를 조금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받는 메시지가 달라진다. 구성원의 뇌를 지속적으로 소모시키는 오피스에서 창의와 몰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늙지 않는 조직은 결국, 늙지 않는 뇌를 위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손혜주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타우 PET 뇌영상과 치매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연구하는 신경핵의학 전문 의사과학자이다.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정회원이자 우세유전 알츠하이머병 국제연구망DIAN 연구자로, 최근에는 뇌과학과 공간 설계를 접목한 뉴로테리어Neuro + Interior 관점에서 집과 주거공간을 뇌의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정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손혜주 중앙대학교병원 핵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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